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550&aid=0000000077
근대5종은 근대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을 휠쓸었던 나폴레옹 전쟁 당시 군령을 전하기 위해서 전쟁터를 돌파하는 전령병의 다양한 활약(총과 칼로 상대를 제압하고 말을 타거나, 뛰거나, 헤엄을 쳐서 이동하는 등)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근대5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지난 주에 소개한 1편을 참조하면 된다). 이런 유래가 보여주듯 전통적으로 근대5종은 유럽 국가들이 초강세를 보였던 종목이었다.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남자 근대5종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금메달은 거의 유럽인들의 몫이었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비유럽에서 금메달이 나온 것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구 소련연방이었던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이 배출한 것이 유일하다.
유럽 초강세인 근대5종에서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세계선수권대회 은메달을 따냈던 사람이 있다. 지금은 옛 소속팀이었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일반직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이춘헌(40)이다. '삼위일체'는 한국의 근대5종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터줏대감 이춘헌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눈물 바다가 된 모스크바 세계선수권대회 현장, 그리고 아쉬움을 남긴 아테네 올림픽
2004년 5월 28일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국제근대5종연맹(UIPM)이 주관하는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개인전 결선이 펼쳐졌다. 그 전해에 한국체대를 졸업하면서 처음으로 성인국가대표팀에 선발됐던 이춘헌에게는 두번째로 출전하는 세계선수권대회였다. 2003년 7월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세계선수권대회에 첫 출전했던 그는 비록 24위에 그쳤지만 세계의 벽에 충분히 도전할만 하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첫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물론 메이저 대회에 처음 나서다보니 긴장도 많이 됐다. 그래서 승마에서 어이없는 실수가 나왔다. 말을 타고 장애물을 넘어야 하는데, 반대 반향으로 건너뛴 것이다(웃음). 그래서 승마에서 최하위권의 점수를 받았는데, 다른 4개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냈기에 승마에서 큰 실수만 하지 않았다면 메달권에 들 수 있는 점수였다. 큰 벽을 느끼지 못했다. 충분히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두번째로 출전했던 모스크바 대회에서 이춘헌은 자신감만큼이나 큰 성과를 냈다. 총점 5596점을 얻어 당당히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근대5종 역사상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당시까지 아시아 선수가 거둔 최고 성적이었다. 아시아인 최초의 메달이자 한국 선수로도 당연히 처음이었다.
"모스크바 대회에서는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근대5종이 지금과 달리 사격~펜싱~수영~승마~육상의 순서로 열렸다. 변수가 많은 승마에서도 (당일에 추첨한)말과 호흡이 잘맞아서 만점을 받았다. 반면 경쟁자들은 승마에서 점수를 많이 잃었다. 마지막 육상에서는 3㎞를 뛰어야 하는데, 내가 쭉 선두그룹을 형성했다. 500m 정도를 남겨두고 나와 리투아니아 선수, 그리고 체코 선수 이렇게 3명이 막판 선두 경합을 펼치게 됐다. 경기장 트랙에 들어왔는데 300m 정도를 남기고 내가 전략적으로 스퍼트를 했다. 충분히 1위로 골인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리투아니아의 안드레우스란 선수는 나보다 연배가 많은 베테랑이었다. 힘을 비축하고 있다가 100m쯤을 남기고 스퍼트를 하더라. 내가 재역전을 당했다. 나도 용을 써보려고 했지만 남아있는 힘이 없었다. 좀 더 경험이 있어서 경기 전술을 잘 썼다면 1위로 들어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래도 2등으로 골인했다. 내가 골인을 한 순간 현장에 있었던 국내 연맹 관계자들, 코치 선생님들, 스태프 등이 모두 몰려나와 포옹하면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그때까지는 한국 근대5종에서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나도 엄청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춘헌(왼쪽)이 모스크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받고 시상대에서 기뻐하고 있다. 사진=이춘헌 제공>
모스크바 세계선수권대회는 그해 가장 중요한 이벤트였던 아네테 올림픽이 열리기 불과 석달 전에 벌어졌다. 이춘헌이 아테네 올림픽의 강력한 메달 후보로 거론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각 언론사에서는 올림픽을 앞두고 유력 메달 후보에 대한 사전 취재를 진행하는게 관례였다. 이춘헌의 경우도 그랬다. 고향인 전남 담양까지 방송사 카메라가 떴다. 부모님들도 올림픽 메달 획득을 전제로 한 사전 인터뷰를 했다. 대한근대5종연맹에서도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딛고 찾아온 기회를 십분 활용해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다. 이춘헌이 취재 일선에 노출되는 일이 잦아졌다. 그리고 열린 아테네 올림픽에서 그는 21위에 그치고 만다. 첫 종목인 사격에서 실수를 연발하면서 16위로 부진하게 출발했고 이후 펜싱과 수영도 20위권으로 밀렸다. 승마에서 9위로 올라섰지만 전세를 뒤집기에는 이미 늦었다. 영광과 좌절이 교차된 2004년이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워낙 메달 후보로 거론되니 부담감이 컸다. 나도 (대회가 열리기 전에는)오픈 마인드로 상황에 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부담이 됐고 패착이 된 셈이었다. 올림픽에 나설 때는 메달을 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첫 종목인 사격부터 긴장을 많이 해서 실수를 연발했다. 뒤에서 내 사격 모습을 지켜보던 감독 선생님이 나중에 "너가 엄청나게 다리를 떨더라"라고 말해주셨을 정도였다. 펜싱에서도 실수가 나왔다. 결국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의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간신히 한단계씩 올라선 대기만성형의 만능 스포츠인
이춘헌은 1980년 5월 전라남도 담양에서 태어났다. 그의 말처럼 "시골 출신답게 어렸을 때부터 논과 밭이나 개울가에서 마음껏 뛰어놀면서 근대5종에 어울리는 종합 스포츠인의 기본을 닦았다." 어렸을 때부터 달리기 등을 좋아했던 그는 광주체중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운동에 입문했다. 처음에는 수영 특기자로 중학교에 합격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수영 기본기를 다졌던 또래 친구들에 비해서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 수영만을 해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고민하던 차에 2학년때부터 육상을 하게 됐다. 수영과 육상이라는 기초 종목을 함께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근대5종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이춘헌이 승마를 하고 있는 장면. 사진=연합뉴스>
목표로 했던 한국체대에 입학할 때도 에피소드가 남아있다. 한체대는 남자 근대5종 선수를 5명만 선발했다. 훗날 근대5종의 레전드가 되는 이춘헌의 입학 성적은 5등이었다. 턱걸이로 간신히 진학한 것이다. 그는 "나중에 당시 (입학 사정을 맡았던)교수님이 '너의 미래성과 잠재력을 보고 뽑은 것'이라고 농반진반의 말씀을 하셨다. 내가 훗날 어느 정도 성적을 내니 그 말이 사실처럼 된 셈"이라고 웃었다. '꼴찌'로 입학했으니 자존심도 상했지만, 그만큼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욕심도 생겼다. 1학년때도 동료 한명이 부상을 당하면서 대타로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행운'도 이어졌다. 그는 이런 식의 행운에 끊임없는 노력을 더해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나갔다. 국가대표에 선발된 것도 한체대를 졸업한 뒤였으니 빠른 편은 아니었다.
"대표팀에 붙박이로 있었던 선배들이 있었다. 그런데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연맹 차원에서 대표팀 세대교체를 추진하게 됐다. 그런 흐름이 맞아떨어지면서 (2003년에)대표팀에 처음 발탁됐다. 태극마크를 달게 되니 운동을 시작하면서 꿈꿨던 일차 목표를 달성한 느낌이었다. 이제 더 큰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테네에 이은 베이징의 실패, 그리고 마침내 세계 정상에 서다
아테테 올림픽의 충격을 딛고 그는 4년뒤인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정조준했다. 2005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0위에 그쳤지만 2006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에서는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안드레이 모이세프(러시아)에 근소하게 뒤진 2위를 차지하면서 다시 한번 올림픽 메달의 꿈을 이어갔다.
"아테네에서 베이징으로 이어지는 4년 동안 적지 않은 국제 대회에 출전하면서 경험을 쌓아갔다. 전체적인 경기 운영의 노하우가 축적되는 것이 느껴졌다. 하면 할수록 근대5종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종목이 아니라는 생각을 절감했다. 하루에 5개 종목을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한 종목이 끝나고 잠시의 휴식 시간뒤에 다른 종목을 해야 하는데, 몸과 근육의 미세한 변화를 빨리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변화를 (경쟁자들보다)빨리 몸에 익숙하게 만드는데 장점이 있다고 자부했다. 근대5종은 중간에 승마를 한다. 말과도 빨리 교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 점들을 (4년동안)많이 키워왔다. 올림픽에서 마주칠 경쟁 선수들에 대한 분석도 철저하게 진행했다."
이렇게 치밀하게 준비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었지만 결과는 오히려 4년전보다 퇴보했다. 아테네때는 21위로 레이스를 마쳤지만 베이징에서는 33위로 뒷걸음쳤다. 거의 최하위권이었다.
"승마에서 '빵점'을 맞은 것이 결정타였다. 말은 경기 당일 추첨을 통해서 결정되기에 '복불복'인 경우가 많다. 베이징때는 (나에게 걸린) 말이특히 예민했다. 결국 경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4년동안 나름대로 준비를 했기에 실망이 컸다."
'화불단행'이라고 했던가. 이듬해인 2009년 이탈리아 전지훈련 도중 왼쪽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다. 그의 나이 서른살이 되던 해였다. 수술을 받고 두달 이상을 쉬었다. 현역 시절 가장 큰 부상과 재활이었다. 다시 필드로 복귀하니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기다리고 있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이 세번에 걸쳐서 열렸다. 1차 선발전에서 20명을 뽑는데 19위를 했다. 2차 선발전에서 10명을 추리는데 10위를 했고(웃음). 마지막 3차 최종 선발전에서 5명을 뽑는데 공동4위로 턱걸이를 했으니 매번 사실상 거의 꼴찌로 합류한 셈이다. 수술을 받고나서 재활은 잘됐지만 체력적으로 쉽지 않았다. 그런 어려움속에서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나섰는데 5명의 멤버 가운데 4명만 실제로 출전할 수 있었다. 후배들과 감독 선생님이 (상대적으로 경험이 많은)나를 배려해 줬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래서 출전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개인전 은메달, 단체전 금메달의 성적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가 아깝지 않은 대목이다.

<이춘헌이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개인전 은메달을 차지한 뒤 시상대에서 태극기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는 2011년 5월 중국 청두에서 열린 월드컵 4차대회에서 드디어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근대5종 월드컵 우승이라는 또하나의 이정표를 세우는 순간이었다. 당시 언론 인터뷰를 보면 이춘헌은 "만년 이인자 딱지를 떼어내서 너무 기분이 좋다"고 기뻐했다. 레전드에게도 2위보다 좋은 것은 역시 1등이었다.
그 여세를 몰아 이듬해인 2012 런던 올림픽에서 3회 연속 올림픽 출전이라는 목표를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2012년 초 미국 콜로라도에서 진행됐던 전지훈련에서 그만 부상을 당했다.
"(월드컵 우승이후)욕심이 과했던 것같다. 몸에 과부하가 왔다. 전훈이 벌어졌던 콜로라도는 고지대였다. 처음에는 훈련을 잘 소화하고 몸도 좋았는데 훈련 2주차가 넘어서면서 (무리를 한 여파로)종아리 근육이 올라왔다. 나머지 2주 훈련을 전혀 소화할 수가 없었다. 전훈 이후 바로 이어졌던 월드컵 대회 현장까지는 갔지만 회복이 안되면서 결국 경기에 나설 수가 없었다."
이후 런던 올림픽 출전도 불발된 이춘헌은 2013년 10년동안 정들었던 태극마크와 작별을 고했다. 2년뒤인 2015년에도 현역에서도 은퇴했다.
"이춘헌이라는 한국인이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세계선수권 메달을 땄다는 점은 지금도 큰 자부심으로 남아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경기력이 최고 정점에 올랐을 때 올림픽에서 메달을 추가하지 못한 점은 지금도 아쉽다. 현역 시절 육상에서는 누구와 붙어도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펜싱과 승마같은 기술 종목도 장점이었다. 취약점은 오히려 (내 출발점이었던)수영이었다. 5개 종목에 능통해야 하는 근대5종은 한 종목이 끝날 때마다 묘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또 하루에 5개 종목이 열리는 특성상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스포츠의 격언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이춘헌이 현역 시절 사격 경기를 하기 전에 포즈를 잡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춘헌 이후 한국 근대5종은 끊임없이 올림픽 메달에 도전했지만 아직까지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과연 후배들은 이춘헌의 못다이룬 꿈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인가.
"전웅태를 포함한 후배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근대5종의 길을 걸어오면서 아시아 무대에서나 세계선수권대회 등에서 모두 메달을 따냈다. 하지만 올림픽은 다른 대회와 차원이 다른 이벤트인 것은 분명하다. 나는 올림픽에서 긴장을 많이 했다. 후배들은이 마인드를 편하게 가지고 지금까지 준비했던 것을 차분히 펼쳐낸다면 도쿄에서는 충분히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올림픽에서 메달이 제일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동안 준비했던 것을 편하게 마음껏 펼쳐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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